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스토프 전투 (문단 편집) == 전투 이전 == [[파일:003라스푸티차.jpg]] 라스푸티차 때문에 진격에 어려움을 겪는 [[독일군]] 1941년 6월 22일 [[바르바로사 작전]]의 개시와 함께 독소전쟁의 막이 올랐다. 북, 중, 남부 3개 집단군으로 구성된 독일군은 말 그대로 폭풍처럼 소련을 밀어붙였다. 북부집단군은 레닌그라드를 향해 진격해나갔고 주공인 중부집단군은 경이로운 포위섬멸전을 펼치며 스몰렌스크에서 소련의 3개 야전군을 갈아버리고 50만명의 포로를 잡았고, 민스크 일대에서는 4개 야전군을 소멸시키면서 40만에 육박하는 전력손실을 입히면서 밀어붙였다. 개전 후 가장 전과가 부족했던 남부집단군 또한 우만에서 30만의 소련군 중 대부분을 분쇄하면서 앞으로 진격했다. 결정적으로 [[스탈린|대원수]]의 고집 때문에 키예프에 70만의 병력이 고립되었고 이들은 [[하인츠 구데리안]]의 기갑집단에 의해 난도질 당하고 사라졌다. 게다가 크림반도에서 마저 대원수의 아집 때문에 [[만슈타인]]의 11군에 의해 13만의 병력이 쓸려나가면서 도네츠크- 돈 강 라인이 개방되면서 크림반도는 독일군의 놀이터가 될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키예프 전역과 크림반도에서의 서전이 마무리되자 남부집단군의 관할은 수미-크라스노그라드-마리우폴 라인으로 정리되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남부집단군은 하르코프를 공격, 점령한다. 그런데 당시 남부집단군은 지칠대로 지친 상황이었다. 6월 작전 개시 이후 끝없이 앞으로 달려나가 수백km를 진격한 현재까지 단 한번도 쉬지 못했다. 더욱이 보급과 충원도 충분히 이뤄지지 못해 공세종말점에 다다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결정적으로 [[라스푸티차]]가 절정에 이르면서 진격이 완전히 중단되었다. 당시 남부집단군은 하르코프-도네츠크 서부-타간로그 라인을 담당하면서 전선 형태도 그다지 웃지 못했다. 그런데 [[OKH]]는 남부집단군에게 보로실로프그라드, 스탈린그라드, 코카서스를 먹으라는, 말도 안되는 지시를 하달한다. 사령관 [[룬트슈테트]]는 이것이 [[히틀러]]의 지시임을 직감하고, 어쩔 수 없이 전진에 나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